[여성소비자신문] 프라이버시는 사라지고, 형사처벌만 남았다 - 도시정비법 정보공개 규정,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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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1-27본문
프라이버시는 사라지고, 형사처벌만 남았다
- 도시정비법 정보공개 규정, 이대로 괜찮은가?
법무법인 센트로
대표 변호사 김정우, kjw@centrolaw.com
재건축·재개발 조합을 자문하는 변호사로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 서류도 공개해야 하나요?”
그러나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도시정비법상 정보공개의무는 조합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그 규정 방식과 제재 수단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 정보공개의무가 현실에서는 조합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광범위하게 위협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도시정비법 제124조는 정비사업 시행과 관련된 서류 및 ‘관련 자료’를 인터넷 등에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관련 자료’의 범위가 법문상 전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명시적으로 열거된 서류 외에 어떤 문서까지 포함되는지 기준이 없다. 해석에 따라서는 정비사업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모든 자료가 공개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불명확한 공개의무는 단순한 행정적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정비법은 정보공개의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라는 형사처벌을 예정하고 있다. 나아가 벌금 100만 원 이상이 확정되면 10년간 조합임원이 될 수 없다는 중대한 결격사유까지 발생한다. 공개 여부를 두고 해석이 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조합임원은 언제든 범죄자가 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에 놓인다. 단순한 공개 지연이나 해석상 다툼이 있는 사안도 형사책임과 장기적인 자격 박탈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임원이나 추진위원장에게 “이 자료는 공개 대상이 아니다”라고 단정적으로 자문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동일한 문서를 두고도 법원 판단이 엇갈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떤 재판에서는 유죄, 다른 재판에서는 무죄가 선고되기도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 제도의 또다른 피해자는 일반 조합원들이다. 각 조합원 개인의 성명, 주소, 전화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에 대해서 정보공개청구가 들어올 경우 조합 임원은 위 정보를 모두 공개해야만 한다. 각 조합원 본인의 동의와 무관하게, 개인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구조다.
현행 도시정비법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법률상 명시적으로 비공개가 허용되는 개인정보는 주민등록번호 정도에 불과하다. 전화번호나 주소는 보호 대상이 아니다. 대법원은 조합원 간 정보 공유의 필요성을 이유로 조합원 개인의 전화번호까지 공개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총회 서면결의서 역시 공개 대상이라고 보아, 누가 어떤 안건에 찬성하거나 반대했는지까지 사실상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개인정보가 공개된 이후 그 정보가 어떻게 활용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무분별한 연락이나 조합원들 사이의 갈등 유발, 심지어 범죄 악용의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 실제 현장에서는 “왜 내 전화번호를 공개하느냐”는 조합원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 그 불만과 부담은 고스란히 조합임원들에게 돌아간다. 정비사업의 투명성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조합원과 임원 모두에게 불안과 갈등을 안기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프라이버시는 단순히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아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즉 자신의 정보를 언제, 어느 범위까지, 누구에게 제공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다. 그럼에도 도시정비법은 조합원 개인의 동의 여부나 위험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한 공개를 강제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의무가 형사처벌이라는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공개 지연이나 경미한 누락, 해석상 착오까지도 형사범으로 취급될 수 있는 구조는 헌법상 비례원칙과 명확성 원칙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동일한 문서를 두고도 하급심과 상급심의 판단이 엇갈리는 사례는 적지 않다. 판사들조차 해석을 달리하는 규정을 근거로 국민을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되묻게 된다.
다른 법률과 비교하면 이러한 규율 방식의 과도함은 더욱 분명해진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정보공개를 거부하더라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 공동주택관리법이나 상법 역시 정보공개 의무 위반에 대해 과태료 수준의 제재만을 두고 있다. 투명성에 있어서는 정비사업에 뒤지지 않는 공공기관과 공동주택, 상법에 관한 법률조차 형사처벌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정비법만 유독 형사처벌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문이다.
정보공개의무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정비사업은 조합원의 재산권과 직결된 사업이며, 투명성은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투명성을 이유로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방식은 조합원들의 불신과 갈등을 키워 사업의 안정성을 해칠 위험이 크다.
이제는 정보공개의 방식과 제재 수단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악의적으로 정보를 은폐하거나 허위 자료를 공개하는 경우에는 엄정한 형사책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한 공개 지연이나 경미한 누락, 해석상 다툼까지 모두 범죄로 취급하는 것은 과도하다. 위반의 정도에 따라 시정명령, 과태료, 행정제재 등 단계적이고 비례적인 수단으로 개편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아울러 도시정비법 제124조의 ‘관련 자료’라는 불명확한 개념은 삭제하거나, 최소한 그 범위를 명확히 제한해야 한다. 공개 대상 자료를 법률에 명시적으로 열거하고, 전화번호·주소 등 개인의 신체적 안전과 직결될 수 있는 정보는 원칙적으로 비공개하도록 하여 조합원들의 프라이버시를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도시정비법의 정보공개 제도는 투명성을 위한 장치이지, 조합원들의 일상을 불안에 빠뜨리는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무엇을 공개할 것인가”만이 아니라, “무엇은 반드시 보호해야 하는가”를 함께 묻는 입법적 성찰이 필요하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는 투명성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국회와 정부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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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센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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