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 조합이 요청한 조건부 인가, 나중에 다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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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5-26본문
조합이 요청한 조건부 인가, 나중에 다툴 수 있을까?
정비사업 실무에서는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해 조합과 인허가권자가 일정한 조건을 전제로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행정청이 관리처분계획인가에 특정한 ‘부담’이나 ‘조건’을 붙이는 것이 허용되는지, 또 조합이 스스로 요청하여 받아들여진 조건에 대해 나중에 위법성을 주장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이러한 쟁점을 다룬 의미 있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사안은 다음과 같다. 한 정비사업조합은 정비사업 구역 내에 있는 시 소유의 토지를 사업시행계획 단계에서 ‘무상양도 대상 정비기반시설’로 정하여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에서 관할 시장은 해당 토지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제97조 제2항상 무상양도 대상에 해당하지 않고 유상매각 대상이라고 보았다.
원칙대로라면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먼저 변경한 후 관리처분계획인가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조합은 사업 지연으로 인한 손해와 혼란을 우려하여, 우선 관리처분계획을 조건부로 인가해주고 이후 사업시행계획 변경 및 관리처분계획 변경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이에 관할 시장은 해당 토지를 무상양도 대상에서 제외하고 유상매각 대상으로 정하는 내용을 부담으로 부가하여 관리처분계획인가를 하였다. 이후 조합은 해당 부담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에서 첫 번째 쟁점은, 관리처분계획인가에 이러한 부담을 붙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에 대하여 서울고등법원은 관리처분계획인가의 성격과 도시정비법 규정을 근거로, 행정청은 관리처분계획이 법령상 요건에 적합한지를 심사하여 인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뿐, 신청 내용과 달리 새로운 의무를 부가하는 형태의 조건이나 부담을 붙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대법원 2010두24951 판결의 취지를 인용하면서, 관리처분계획인가에 법령상 근거 없는 부담을 부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즉, 행정청이 조합에게 “해당 토지를 유상으로 매수할 것”이라는 새로운 의무를 부담으로 부가한 이상, 그 부담 자체는 위법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쟁점은, 조합이 스스로 조건부 인가를 요청해놓고 나중에 그 위법성을 주장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였다. 서울고등법원은 이 부분에서 조합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관할 시장이 원칙대로라면 사업시행계획 변경절차를 먼저 진행할 수 있었음에도 조합의 요청에 따라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하여 부담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하였고, 조합 역시 그 과정에서 조건부 인가를 명시적으로 요청하였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 결과 법원은, 조합이 이후 소송에서 해당 부담의 위법성을 주장하는 것은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는 행위로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였다. 다시 말해 부담 자체는 위법하지만, 그 부담을 스스로 요청하여 인가를 받은 당사자가 뒤늦게 이를 다투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판결은 정비사업 실무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우선 관리처분계획인가 과정에서 행정청이 법령상 근거 없는 조건이나 부담을 임의로 부가하는 것은 허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동시에, 조합 역시 절차 진행 과정에서 스스로 제안하거나 동의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후 신의칙상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실무에서는 사업 일정 압박으로 인해 우선 인가를 받고 추후 정리하자는 방식의 협의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러한 선택이 이후 법적 분쟁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업시행계획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인가 사이에서 권리관계나 정비기반시설 처리 방식이 변경되는 경우, 단순한 실무적 편의만으로 절차를 진행하기보다 관련 법령과 판례의 태도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실제 사업 진행 과정에서는 도시정비법 분야의 법률전문가와 충분히 협의하여 향후 발생 가능한 법적 리스크까지 함께 고려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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