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시사매거진] 깡통주택, 그냥 사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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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4-05-23본문
최근 지인으로부터 자신이 체결한 아파트 매매계약에 관하여 필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도 필자와 같이 부동산 관련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라는 것이다.
상황은 이러했다.
지인은 최근 부동산 규제가 완화된 것을 기회 삼아, 서울 외곽의 아파트를 괜찮은 가격에 샀다고 한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10억 원을 넘게 호가하던 것을 8억5천만 원에 구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파트가 깡통주택(주택담보대출과 세입자의 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집의 실제 매매가에 가깝거나 더 높은 경우)이라는 것.
지인이 처음 아파트를 사려고 찾아 나섰을 때는 8억 원을 예산으로 잡았다고 한다. 투자를 위해 부동산을 볼 때는 예산보다 높은 가격의 부동산도 함께 보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어, 8억8천만 원에 급매로 나온 매물도 보게 되었는데, 자기가 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지인은 영끌이라도 하면 8억5천만 원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3천만 원을 깎아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매수인이 덜컥 팔겠다고 한 것이다.
지인은 집주인 마음이 변할까 싶어 같은 날 저녁 바로 계약서도 쓰기로 했단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기 직전, 지인이 사려는 아파트가 깡통주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택담보대출로 1억 원이 잡혀 있었고, 세입자의 보증금이 7억7천만 원이었다. 부동산중개사는 계약체결 전에 지인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하겠냐고 물어보았고, 지인은 ‘세입자의 건물 인도는 집주인이 책임진다’라는 무의미한 특약사항을 추가하는 것으로 깡통주택을 위해 계약금 8천만 원을 주었다고 한다.
물건은 제값을 주고 사야한다는 것은 법을 모르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검토하고 부동산 매매계약의 문제로 소송할 일이 생기면 이를 전문적으로 맡아 처리하는 변호사가, 8억5천만 원에 사기로 한 아파트가 8억7천만 원의 부담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가격만 생각한다면, 아파트 명의를 이전받으면서 지인이 집주인으로부터 2천만 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계약금 8천만 원을 지불하면서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이다.
만약, 어느 의뢰인이 지인에게 위와 같은 상황에서 상담을 받는다면, 지인은 틀림없이, 조금은 번거롭더라도 아파트 명의를 미리 이전받고 주택담보대출과 세입자에 대한 보증금 반환을 직접 책임지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었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집주인에게 보낸 계약금이, 즉시 세입자에게 입금되어 보증금 반환에 사용되었는지 확인하라는 충고라도 해주었을 것이다.
지인은 무엇에 홀린 듯 계약서를 쓰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계약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음 날 맑은 정신에 나름의 대책을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인은 이제와서 아파트 명의 이전이나 계약금 사용내역 확인에 관한 얘기를 해도 될지 고민이 되었고, 그런 고민을 필자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지인은 이제 어떤 대책을 필요한지 알고 있었지만, 좋은 조건으로 체결된 계약이 괜한 의심으로 깨질까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법은 매매계약과 같은 쌍무계약(매매대금 지급의무와 부동산이전의무와 같이 계약 당사자가 서로 대가적 의미를 갖는 의무를 부담하는 계약을 말한다)에 대하여 동시이행항변권이라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동시이행항변권은 말 그대로, 동시에 의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서, 상대방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한 나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항변할 수 있는 권리이다.
실제 부동산 매매계약에서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집주인이 부동산을 넘겨주지 않으면(소유권이전등기와 인도) 매수인은 매매대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반대로 매수인이 매매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집주인은 부동산을 넘겨주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나아가, 내가 받은 권리만큼만 의무를 이행하면 된다는 의미가 있어, 부동산을 넘겨받았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가치가 거의 없는 깡통주택을 받았다면 그 가치에 상응하는 매매대금만 지급하면 된다. 즉, 주택담보대출이나 세입자의 보증금이 있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그 부분을 제외한 남은 가격만큼 매매대금을 지급하면 충분하고, 대출과 보증금의 부담이 모두 해결되어야 비로소 매매대금 모두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권리는 말로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안전장치이기도 하지만, 계약 당사자 양쪽이 모두 이를 철저하게 지키려고만 하면 매매계약이 성사되고 이행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집주인은 돈을 받지 않으면 부동산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하고 매수인은 부동산을 넘겨받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부동산 매매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매수인이 돈을 모두 지급한 뒤에 비로소 집주인이 미리 부동산중개사에게 맡겨놓은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 명의를 이전하고 아파트 열쇠를 받는 등 어느 한쪽이 동시이행항변권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렇더라도 문제가 되는 거래는 열에 하나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거래는 상대방을 어느 정도 믿고 이루어지고 있고 동시이행항변권을 누군가 포기하더라도 문제없이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인의 경우도, 결과적으로 동시이행항변권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아니 사실은 지인이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할 생각을 못했기때문에 계약이 성사된 것일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는, 지인이 똑 부러진 부동산중개사를 만난 덕분에, 8천만 원의 계약금이 바로 세입자에게 입금된 내역과,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 체결한 전세계약서 등을 확인하면서 크게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부동산 매매계약과 같은 중대한 거래가 있으면 늘 조심하고 긴장한다고 하지만, 사실 한쪽이 다른 쪽을 작정하고 속이려 덤벼들면 전문적인 변호사도 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법이 정하고 있는 동시이행항변권과 같은 권리나 상대방의 의무가 크게 의미가 없을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작정하는 사기꾼들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보통사람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부동산 관련 사건을 포함하여 다양한 법적 다툼을 맡아 처리해보면, 처음부터 한쪽이 나빠서 발생하는 다툼은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다. 원래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관계였으나, 어느 일방이 처한 나쁜 상황으로 인해 혹은 미리 예측하지 못한 상황의 대처가 미흡했음으로 인해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다툼을 최대한 예방하는 것이 법이고 변호사의 도움이다.
그때는 분명 정말 필자와 같은 변호사의 도움이 절실하게 될 것이고,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할 일이 발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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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센트로
- 대표변호사 김향훈,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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