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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유재벌 변호사 인터뷰' ‘빌라왕’ ‘건축왕’의 폭탄 돌리기···전세사기 5가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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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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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사건 이후 매출이 70~80% 정도 떨어졌어요. 매물도 싹 사라졌고 집 보러 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1월 16일 찾아간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 주택 시장은 을씨년스러웠다. 공인중개사들은 하나같이 화곡동 전셋집을 찾는 수요자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입을 모았다. ‘빌라왕’ 김 모 씨가 화곡동에 빌라 122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화곡동 일대에 전세사기 우려가 번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곡소리처럼 화곡동 공인중개업소는 사람들 발길이 끊겨 한산한 모습이었다.

한때 화곡동 빌라는 서울 내에서도 주거비용이 저렴한 데다 지하철 5호선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이점으로 신혼부부나 젊은 층 1인 가구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빌라왕 사태 여파로 거래가 끊기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화곡동의 연립·다세대주택 전세 거래량은 247건으로 전년 동기(479건)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화곡동 일대는 전세사기 위험 매물이 버젓이 등장한다. 현장에서 만난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공인중개사 전용 실시간 중개 현황 사이트를 보여주며 “방금도 뜬 건데 이 난리에도 갭투자 매물을 찾는 이들이 있다. 공시가격 1억원 이하 매물은 세금이 적다 보니 부담 없이 사놓고 세를 놓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중개 현황 사이트 화면에는 ‘공시 1억원 이하 재개발 구역 투자, 갭 4000만원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최근 갭투자 방식의 제2, 제3의 빌라왕들이 검거되면서 빌라 세입자 불안은 날로 커지고 있다. 1월 18일 찾아간 화곡동 전세피해지원센터는 때 이른 오전 시간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담받고 있었다. 이 센터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늘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해 9월 오픈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법률 상담과 긴급 임시주택, 대출 등을 지원한다. “ ‘빌라왕’ 사태 이후 상담 건수가 하루 평균 10~15건씩 늘어날 정도로 문의가 많다”는 것이 센터 관계자 얘기다. 강현정 HUG 전세피해지원센터장은 “가장 빈번하게 접수되는 사례는 무자본 갭투기에 따른 ‘깡통전세’인데, 신탁 사기 피해도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센터 내 법률 상담을 진행한 노윤종 법무법인 카이로 변호사는 “임대인이 정상적으로 자기 주택을 보유하면서 임대해주면 전세사기가 아니지만 피해 사례를 보면 대부분 한 사람이 수십, 수백 채씩 임대를 놓으면서 피해가 커졌다. 임대인은 물론이고 공인중개사까지 같이 공모하는 경우가 많아 공모에 의한 사기죄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화곡동뿐 아니다. 최근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린 인천 미추홀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로 인해 미추홀구 일대가 쑥대밭이 된 것. 미추홀구 일대는 1~2개동만 짓는 이른바 ‘나 홀로 아파트’ 밀집 지역이다. 건축왕 사태 여파로 피해가 커진 숭의동 일대 도시형생활주택 발코니 곳곳에는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숭의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전세 매물은 많이 나오지만 문의하는 사람이 없다”며 “이 지역 전세사기 피해자는 2030세대들인데 주로 은행 대출을 왕창 껴서 전세금을 마련해 문제가 커졌다”고 전했다. 경찰이 추산한 건축왕의 사기 피해액은 266억원에 이른다. 미추홀구청 관계자는 “미추홀구 부동산 가격이 다른 지역보다 낮다 보니 갭투자가 성행했다”며 “선진국처럼 세입자들이 임대인 체납액 등 각종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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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사태가 확산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는 전세 사기 위험 매물이 지금도 버젓이 거래된다.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가 보여준 중개 현황 사이트 화면에 ‘공시 1억 이하 재개발구역 내 투자, 갭 4000(만원)까지’라고 적혀 있다. (조동현 기자)천태만상 전세사기

바지 사장·이중 계약·하루 차 근저당 등 갈수록 진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뒤흔든 ‘빌라왕’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새해 들어서도 신종 사기 수법이 수면 위로 속속 드러나고 피해자가 속출하는 등 사태가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는 모습이다.

빌라왕 사태는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도권 일대에 1000채 이상 빌라를 보유한 빌라왕 김 모 씨가 사망했다.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김 씨가 보유한 빌라는 1139채, 피해 금액만 170억원에 달한다. 또 다른 사기 수법으로 지목된 ‘건축왕’ 권 모 씨는 대부분 자신이 직접 지은 주택 2709채를 일명 ‘바지 임대업자’ 명의로 돌려 피해자를 대거 양산했다. 아파트나 빌라가 준공되면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동시에 전세를 놓는 방식으로 주택을 소유했다. 자금난으로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전세 세입자 300여명이 피해를 입게 됐다. 최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는 오피스텔 200여채를 보유한 ‘오피스텔왕’까지 등장해 세입자 피해가 갈수록 커지는 중이다.

전세사기는 지금도 계속 진화하는 중이다. 전세사기의 5가지 유형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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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진 인천시 미추홀구 모 아파트 창문에 구제 방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윤관식 기자)1. 무자본 갭투자 ‘깡통전세’

‘동시 진행’으로 집값보다 높은 전세금 챙겨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빌라왕’ 전세사기는 건축주(또는 건물 소유자), 임대인, 중개인, 부동산 컨설팅 업체 등이 함께 짜고 세입자에게 집값보다 높은 전세금을 받아 챙기는 방식이다. 전세사기는 빌라 건축주들이 “분양을 일임하겠다”며 ‘동시 진행’ 브로커들에게 컨설팅을 하면서 시작됐다. 동시 진행은 자기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맺은 다음, 임차인에게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빌라를 매입하는 수법이다. 이들 일당은 각자 매물 물색, 임차인 모집, 계약서 작성 등 역할을 분담해 전세·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매도인에게 분양·컨설팅 대가로 받은 수수료를 나눠 가졌다. 1억원짜리 빌라에 대해 보증금 1억3000만원짜리 전세를 계약하고 남는 돈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임대차 계약과 매매 계약을 동시에 진행한 덕분에 자기자본 없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으로 신축 빌라의 매매대금을 충당할 수 있었다. 빌라 수백, 수천 채를 보유해 이른바 ‘빌라왕’으로 불린 이들은 대체로 명의만 빌려준 ‘바지 임대인’이다. 2021년 제주에서 사망한 이른바 ‘빌라왕’ 정 모 씨 배후에 있던 컨설팅 업체 대표와 분양업자(브로커) 등 사기 일당 78명이 벌인 수법이 ‘무자본 갭투기’였다. 이들은 2017년 7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서울 강서구·양천구와 인천 등 다세대주택 628채를 무자본 갭투기 방식으로 매수했다. 이들이 분양·컨설팅 수수료 명목으로 챙긴 수익은 8억원에 달한다. 전세 시세는 수수료 금액을 포함해 부풀려졌다. 피해 임차인들은 이들이 전세보증금만으로 다세대주택을 매입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애초에 분양대금은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으로 충당한 탓에 전세 계약이 만료돼도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었다. 이들 일당은 임차인 37명의 전세보증금 80억원을 속여 빼앗은 혐의로 지난 1월 13일 경찰에 검거됐다.

조성근 법무법인 에스 변호사는 “이들은 세입자에게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 전세보증금을 반환해줄 것처럼 얘기했으나 알고 보니 처음부터 반환할 생각이 없었던 정황이 드러나 사기죄 성립이 가능하다”며 “가담자 사이에 지휘 체계까지 갖춘 경우 범죄단체 조직죄로 가중처벌될 수 있다”고 말했다.

2. 나도 모르게 바뀐 집주인

계약 만료·갱신 시점에야 알 수 있어

조직적으로 이뤄진 전세사기 중에는 집주인이 임차 기간 중 바뀐 경우가 많다. 임차인이 아무리 계약 체결 직전까지 집주인의 권리관계 등을 꼼꼼히 확인해도 전세로 사는 중 자기도 모르게 집주인이 바뀌면 달리 방도가 없다. 현행법상 집주인이 바뀌는 사실을 임차인에게 알려주거나, 매매 계약에 임차인을 참여시킬 의무가 없어서다. 만약 작정하고 매매 사실을 숨긴다면 임차인은 집주인이 바뀐 걸 계약 만료·갱신 시점이 돼야 알 수 있다.

인천 부평구 원룸에 전세로 거주하던 C씨는 임차 기간 중 집주인이 바뀌었다. 하지만 새 집주인이 세금을 체납하면서 살던 집에 가압류가 걸려버렸고, 임차 계약이 끝난 지금까지도 전세보증금 1억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집주인이 국세를 체납하면 나라가 세금부터 우선 거둬들이다 보니, 임차인이 돌려받아야 할 보증금은 후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한 HUG를 통해 보증 이행 청구를 진행했지만 보증금 환급 시기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뒤늦게 알고 보니 C씨가 살던 집은 신축 당시 7000만원에 분양된 원룸이었다. 전 집주인은 입주 3년 차에 분양대금보다 3000만원 높은 1억원에 전세 세입자(C씨)를 받고 원룸을 팔아넘겼다. 새 집주인은 본인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원룸과 빌라 여러 채를 소유 중이었다. C씨는 “새 집주인은 세금을 낼 능력도 없는데 한꺼번에 여러 채의 원룸·빌라를 소유하게 됐다”면서 “처음 전세 계약서를 쓸 당시 등기부등본을 꼼꼼히 확인하고, 계약과 동시에 전입신고하고 확정일자를 받아둔 게 무의미했다”고 토로했다.

서울 구로구에서도 빌라 2개동 집주인이 임차인들 모르게 바뀐 일이 있었다. 전세보증금 잔금일에 빌라를 하나씩 팔아넘기는 수법이었다. 이곳에 살던 임차인들은 새 집주인에게서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결국 임대차보증금반환소송을 거쳐 살던 집을 직접 경매로 낙찰받는 수밖에 없었다. 집을 경매로 낙찰받은 약 1년 6개월 동안 임차인들은 전세보증금을 되찾지 못할까 불안에 시달렸다. 빌라 2개동의 임차인들은 전 집주인이 의도적으로 전세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집을 매도했다 판단하고 그를 형사 고소했지만 무혐의로 종결됐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집을 경매로 낙찰받은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빌라에 별다른 선순위 채권이 없었기에 임차인들이 낙찰이라도 받아 전세보증금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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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탁부동산 사기

소유권 가진 신탁사 법적 책임 없어

집주인이 전세 계약을 맺을 권한이 없으면서 이를 속이는 수법도 빈번하다. 실제 소유주가 아닌 사람이 소유주인 척 거짓말을 해 전세 계약을 체결한 뒤 보증금을 챙기는 식이다.

특히 전세사기가 신탁사를 낀 경우라면 더 골치 아프다. 집주인은 신탁사를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기도 하고, 전문가에게 관리를 맡겨 수익을 내기도 한다. 이렇게 신탁 등기가 된 집은 집주인이 아닌 신탁사가 소유권을 갖게 된다. 때문에 신탁사와 우선수익자(대부분 금융권) 동의 없이는 집주인이라 해도 마음대로 전세 계약을 맺을 수 없다. 만약 집주인이 이를 숨기거나 동의를 받은 척 거짓말을 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도 부동산의 소유자인 신탁사는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

이 경우 임차인은 사실상 소유주인 신탁사 허락 없이 살고 있는 ‘불법 점유자’로 간주돼 집을 비워야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재산이 없는 임대인으로부터는 보증금반환소송에서 승소해도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어 돈을 반환받기가 어렵다. 신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신탁 원부 발급이 번거롭고 권리관계 파악이 까다로운 점을 악용한 수법이다.

실제로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해운대 송정 지역에서 발생한 한 동짜리 아파트 전세금 편취 사건을 수사 중이다.

건설업자인 D씨는 건물을 담보로 신탁회사에서 거액을 대출받아 법적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였지만 신탁등기 건물이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세대는 20여가구. 이 전세 계약은 대부분 특정 공인중개사를 통해 체결됐다. 우선수익자(S신협)는 신탁사 동의 없이 계약을 했다며 임차인들에게 집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임차인 대부분은 승산 없는 법적 다툼을 피하기 위해 방을 뺐다. 전세금은 한 푼도 못 받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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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 모 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4. ‘하루 차’ 대항력이 뭐길래?

세입자 이사 당일 저당권 설정하면 임차인 후순위로

빌라뿐 아니라 아파트에서도 전세사기가 빈번하다. 2020년 3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59㎡ 아파트를 23억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당시 시세보다 2억원가량 높은 금액의 매매 계약이었다. 매수자 E씨는 시세보다 높게 사는 대신 매도자 F씨에게 보증금 12억5000만원에 2년간 전세로 거주해달라고 요구했다. F씨가 이를 수용해 매매 계약과 전세 계약이 동시에 진행됐고 집주인에서 세입자가 된 F씨는 차액인 10억5000만원만 받았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계약 당일 전입신고와 함께 확정일자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F씨는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됐다. 근저당 사기를 당한 것이다. 매수자가 같은 날(계약 당일) 대부 업체로부터 주택담보대출 21억5000만원을 받고, 주택에 근저당으로 25억8000만원을 걸어서다. 계약 효력의 발생 시점인 대항력을 이용한 전세사기다. 대항력이란 집주인에게 계약 기간 보장을 요구하고, 이후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하더라도 그 효력(대항력)은 ‘하루 뒤 0시’부터 발생한다. 반면 저당권 효력은 저당권 설정 등기가 이뤄지는 ‘즉시’ 발생한다. 집주인이 세입자가 이사하는 당일 저당권 등을 설정해버리면 임차인은 후순위로 밀려버린다는 뜻이다. F씨가 계약 직전까지 등기부등본을 통해 근저당이 없음을 확인하고 계약 직후 바로 전입신고와 함께 확정일자를 받았어도 소용이 없다. 이후 해당 아파트는 지난해 공매(물건번호 2022-01628-001)로 나왔다. 처음에는 최저 입찰가가 30억8000만원에 책정됐다가 이후 유찰을 거듭했다. 지난해 10월 최저 입찰가 15억4000만원에도 주인을 찾지 못하고 또 유찰됐다. 근저당(25억8000만원)보다 높은 금액에 낙찰되지 않으면 F씨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5. 이중 계약을 하는 경우

집 한 채 여러 임차인과 계약

부동산 계약은 집주인과 임차인이 직접 맺는 게 원칙이다. 다만 사정이 있는 경우 ‘대리인’이 대신 계약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리인이 집주인에게는 월세 계약을 하겠다 해놓고, 세입자와는 전세 계약을 맺은 후 보증금을 가로채기도 한다. 2019년 경기 안산시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던 자매가 이런 수법을 이용해 120여명으로부터 65억원을 챙긴 사건이 대표적이다. 배우 김광규 씨가 당한 전세사기도 이중 계약에 해당한다. 김광규 씨의 경우 공인중개사가 월셋집을 전세로 소개한 뒤 중간에서 전세금을 챙겼다.

처음부터 집주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노리고 집 한 채를 여러 임차인과 계약하는 수법도 있다. 해당 집에 임차인이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 전입세대 열람은, 임대차 계약을 맺은 이후에나 신청할 수 있다. 계약 전에는 타인의 임대차 사실을 서류상으로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맹점을 노린 것이다. 특히 중개인 없이 임대인과 직거래로 임대차 계약을 진행하는 경우 이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 월세 세입자가 집주인 행세를 하며 다른 세입자와 전세 계약을 맺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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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예방 체크리스트·주의사항‘구멍 숭숭’ 허술한 전세 제도

깜깜이 시세·체납 임대인 공개해야

세입자들이 주변 전세 시세만 잘 확인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빌라왕 사태를 비롯해 전세사기가 횡행할 수 있었던 건 ‘깜깜이 시세’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연립·다세대주택(빌라)은 아파트와 달리 실거래가 신고 의무가 없다. 애초에 매매 사례가 많지도 않아 정확한 시세를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건축주와 임대사업자, 중개업자 사이의 모종의 담합을 통한 시세 조작이 만연해 있다. 적정 매매가가 2억원(공시가격 1억4000만원)인 경우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2억1000만원까지 한도를 내주므로 세입자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전세보증금을 2억1000만원으로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는 전세가와 매매가가 같더라도 보증보험 가입으로 자신의 돈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 임대인의 깡통전세 계약 요구에 응하게 된다. 나아가 예전에는 세입자들이 자기 돈으로 전세 자금을 마련했지만 지금은 금융기관 대출로 해결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시중은행이나 HUG의 안심전세대출을 이용하면 전셋값의 최대 80~90%까지 대출이 가능해졌다. 전세자금을 쉽게 마련할 수 있게 되자 전세 가격은 더욱 올랐고, 이는 갭투자를 활성화하는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 대목에서 세입자들은 HUG의 전세금반환보증제도를 믿고 전세 계약을 체결했을 테지만 이마저도 허술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세보증금반환제도는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보증사가 먼저 지급해주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환수하는 방식이다. HUG는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합한 금액을 주택 가격과 동일한 수준까지 보증해주고, 주택 가격 산정 기준을 공시가격의 140%까지 적용해 사기범들이 ‘무자본 갭투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 이런 깡통주택들은 경매로 넘어갔을 때 시세에 낙찰받더라도 세금 체납액과 은행 선순위 근저당을 제외하면 임차인들은 보증금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임대사업자제도 역시 전세사기가 확산된 원인으로 손꼽힌다. 임대사업자제도는 임대인에게 합산 배제, 양도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임대료 인상을 5% 이내로 제한하고 의무 임대 기간을 유지하도록 하는 제도다. 앞서 전 정부가 2017년 해당 제도를 시행했고 다주택자들의 세 부담이 줄어들자 한 사람이 수백, 수천 채의 임대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집값 과열의 주범으로 꼽힌 임대사업자제도는 2020년 사실상 폐지됐고, 임대사업자들은 종부세 폭탄을 떠안게 됐다.

다행히 최근 ‘국세기본법 및 국세징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는 4월부터는 전세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 없이도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전국 세무서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또 확정일자를 받았다면 전세보증금은 그 이후 발생한 세금보다 우선 변제받게 된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대표는 “집주인의 체납 정보를 조회하지 않더라도 등기부등본에 표시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임대차 현황 조사권을 공인중개사에 부여하는 식으로 실질적인 세입자 보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과 우리은행 전용망을 연계해 대출 심사를 진행하고, 확정일자 정보 등을 대출 실행 전 확인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일부 집주인이 주담대 저당권 등기와 세입자 확정일자 법적 효력의 시차를 악용해 세입자 몰래 전세 계약 직후 담보대출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거주 도중 임대인이 바뀐 사실을 세입자가 알기 어려운 구조는 여전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집주인이 ‘바지 임대인’으로 갑자기 변경되더라도 이를 통지할 의무가 없는 허점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임대인과 공인중개사의 책임, 의무가 강화돼야 한다는 조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정석현 법무법인 화인 변호사는 “이번 빌라왕 사건에서 공인중개사의 과실이나 부정한 행위가 있었는지 세입자가 직접 밝혀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전세사기가 발생했을 때는 임차인에 대한 설명 의무를 다했는지 중개인이 직접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윤 법무법인 에스 변호사 역시 “전세사기는 공인중개사도 함께 개입된 경우가 많아 공인중개사의 폐업 경력도 조회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세사기를 막으려면 전세금대출 보증을 줄일 게 아니라 전세금 반환보험 한도액의 기준인 주택 가격 산정을 제대로 하는 게 우선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시가격의 140%까지로 해주는 집값 기준액을 하향하는 한편, 전세금을 보증해줄 때 현장을 확인하고 엄격하게 심사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빌라에 입주할 때 전세보증금이 매매 가격의 70%를 넘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유재벌 법무법인 센트로 변호사는 “등기부등본을 통해 선순위 권리관계를 확인해 전세가율 70% 이내로 계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4호 (2023.02.01~2023.02.07일자) 기사입니다] 


○ 문의

법무법인 센트로

- 대표변호사 김향훈, 김정우

- 담당변호사 유재벌

전화 02-532-6327

홈페이지: www.centro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