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검사는 복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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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5-01-16본문
공판검사는 복대리다
- 형사 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을 실질화해야 한다 -
1. 천하무적 복대리 항변
민사재판에서 천하무적의 항변이 있다. 바로 ‘복대리의 항변’이다. 재판장이 소송대리인에게 재판과 관련하여 석명을 요구하면 ‘저는 오늘 복대리로 나왔는데요.’라고 하면 그만이다. 재판장은 “아~ 복대리시죠. 사안을 잘 모르시겠군요.”라고 하고 그냥 넘어가는 수가 많았다.
복대리인은 본대리인이 긴급한 일이 있어서 못나오거나 아니면 당일 재판진행이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될 것이 예상되는 경우 본대리인의 위임에 의하여 나오는 변호사를 말한다. 그는 당일 재판일정을 때우러 나온 사람이므로 사안을 심도 있게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재판장도 복대리인에 대하여는 깊이 있는 질문을 지레 포기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민사재판장들도 ‘복대리도 엄연히 대리인이므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나오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할 말이 없다. 다만 복대리는 책임감없이 당일만 때우러 나온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수모를 당하더라도 잠깐 참고 법정을 나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2. 공판검사는 복대리?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는 수사검사가 직접 나와서 공판에 관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공판검사가 재판을 진행한다. 공판검사는 공익의 대변자로서 피고인에 대하여 형벌을 구하는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형사피해자를 대변하는 자이기도 하다.
공판절차에 이르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은 형사피해자는 이제는 하소연하고 믿을 사람이 공판검사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사건을 잘 모른다. 사건을 수사검사로부터 넘겨받아 기록만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간혹 수사검사와 협의할 경우도 있겠으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사건의 진행에서는 단계마다 실질적인 협의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판검사는 복대리’라고 하는 필자의 도발적인 언급에 대하여 검찰에서는 반발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이 그러한 것을 어쩌랴? 구치소의 피고인들이 공판검사를 ‘앵무새 검사’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수사검사를 모두 공판에 투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검찰의 공판업무상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3.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실질화해야 한다.
우리 헌법 제27조 제⑤항에는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에 따라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피해자등의 진술권)에서는 피해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는 법원은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현실화되어 있지 않아 피해자가 법정에 설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다. 게다가 ‘증인’으로 신문한다고 하고 있으므로 형사재판의 ‘당사자’로 참여할 여지는 없다.
필자는 형사피해자의 대리인으로서 선임계 및 의견서를 제출하고 법정에서 발언하려고 한 적이 있었으나, 앉아야 할 자리도 마땅히 없어서 방청석에서 일어나 발언을 하였다. 그마저도 재판장은 충분한 시간을 주지도 않고, “변호사님이 제출하신 의견서는 잘 읽어보았으니 그 정도로 하십시오.”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머쓱하게 앉고 말았다.
4. 형사법정은 피고인의 변명의 경연장이다.
형사법정은 피고인의 변명의 경연장이고 피해자가 두 번 통곡하는 곳이다. 어디에도 피해자가 설 곳은 없다. 공익의 대변자이므로 피해자도 대변해야 하는 공판검사는 새파란 젊은 사람들이 보통이고 사안을 잘 모르며 공소장조차도 더듬더듬 읽는 수가 있다.
물론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되므로 그 인권은 보장되어야 하나, 사실상 유죄로 의심받는 자들만 기소되는 것이 현실인데 그들의 변명이 주가 되고, 피해자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통탄스러운 일이다.
5. 변호사니까 해야 하는 말이라면…
어느 변호사가 ‘변호사니까 해야 하는 말’이라는 칼럼을 쓴 것을 읽어보았다. 과실로 누군가를 죽게 만든 피고인을 위해 열심히 변론했는데 법정밖에서 어느 여인네가 다가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변호사님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람을 죽인 저 사람은 돌봐야 할 자식과 가정이 있고, 억울하게 죽은 제 남편은 가정이 없단 말입니까?”
이에 대하여 그 변호사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이 법정에서 한 말은 ‘변호사니까 해야 하는 말’이라는 취지가 바로 칼럼의 주된 내용이었다.
6. 피해자니까 해야 하는 말은 어디서?
하지만 피해자니까 해야 하는 말은 어디서 하는가? 형사소송법은 범죄인을 위한 마그나카르타라고 한다. 서양 중세봉건시대에는 하도 억울한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였기에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형사소송법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피해자를 위한 마그나카르타는 어디 있는가?
재판에 참석하는 피해자는 검사 옆자리에 앉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직접 피고인 및 증인신문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변호사가 그를 대리하여 법적 조언을 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김혜정 영남대 로스쿨교수는 법률신문 2014-11-25.자에서 “형사 공판절차에 피해자 참가제도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을 편 바 있는데 적극 찬성한다. 그것이 세계적 추세이고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는 피해자가 수사 단계에서부터 자신의 변호사가 입회한 가운데 현장조사나 증인·피의자 신문, 전문가 의견 청취 등을 진행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독일에서는 특정 범죄의 피해자가 ‘보조 검사’로 형사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한겨레 신문 2014. 10. 28.자 ‘피해자가 직접 검사가 되는 나라’, 박용현 논설위원, 참조).
피고인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인권은 더 중요하다. 범죄 피해를 하소연하는 피해자의 입을 가로막는 것은 범죄를 방지할 의무가 있었던 국가가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고서 할 짓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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